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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주사기를 무서워 하는 서른두살. 생에 처음으로 헌혈하다!

by 박또니 2019.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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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기사를 통해 병원에 수혈할 피가 없어 응급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야 했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국에선 적집자에 대한 인식이 봉사와 인류애보단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져있고, 잘못된 혈액관리로 다량의 수혈용 혈액이 폐기되는 사건도 추가로 발생되면서 헌혈과 적십자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나빠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헌혈자 수가 세계 상위권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유례없는 빠른 고령화로 인해 헌혈 가능한 인구수가 줄어들고 있다 보니 수혈용 혈액이 급속도로 동이 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한다.

 

나는 학창 시절 잘 먹는데 유난히 살이 안 찌는 그런 체질을 가지고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체질도 체질이지만 위장 자체가 제 기능을 잘하지 못하니 소화가 잘 되지 않았고, 장에선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니 먹은 만큼 탈도 많이 나서 바로바로 배출되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건강검진을 하면 항상 빈혈 때문에 헌혈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때마다 아쉬운 척은 했지만 주사기를 워낙 무서워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나는 헌혈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며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곤 했었다.

 

그후로 10년. 학업 스트레스가 사라져서 그런가, 아니면 야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이젠 몸이 거대해져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찰 정도로 정도로 통통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빈혈 때문에 헌혈을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헌혈을 계속해서 외면해 왔었다. 그런데 현재 피가 부족해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응급실에 상황을 기사로 마주하게 되니 어디서 없던 인류애가 생기게 된 건지,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뿐인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곤 헌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용기를 내고 '헌혈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헌혈의 집 서현센터

 

주소 : 분당구청 방면 로데오거리 서원빌딩 4층  
전화번호 : 031-707-3795   
영업시간 : 평일/토요일 AM 10시 ~ PM 8시, 공휴일 AM 10시 ~ PM 6시  

 

 

 

생애 처음으로 가본 헌혈의 집은 서현센터였다. AK플라자 6번 출구로 나오면 다이소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그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처음 오는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건물 앞에는 헌혈 캐릭터가 세워져 있고, 건물 주변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팻말을 들고 서있는 학생들이 있어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찾아간 이날은 수능날 점심시간이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내부엔 사람들이 없어서 한산했고 생각보다 크고 깨끗했다.

 

 

 

처음 가니 안내원분께서 신분증은 따로 챙겨놓은 뒤 보관함에 옷과 가방을 보관하고 바로 옆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문진표를 작성해주라고 안내해 주셨다. 문진표 내용은 수혈에 앞서 현재 먹고 있는 약은 있는지, 현재 앓고 있는 병은 없는지, 최근 외국에 나갔다 온 적이 있는지 정도를 체크해주었고 주민번호와 이름을 적어 문진표 작성을 완료했다.

 

이후 대기인원이 없어 바로 검사실에 들어갔는데 앉아계신 간호사님이 손끝 채혈을 통해 정확한 혈액형과 철분량 등을 체크해주셨다. 이것은 헌혈에 앞서 1차적인 검사였는데 나는 또 빈혈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히려 철분량이 충분하다며 평소에 잘 먹고 있는것 같다는 말에 괜히 혼자 머쓱해졌다. 검사실에서는 테스트 채혈뿐 아니라 집주소를 적고 2차 검진표를 작성했는데 손끝 채혈에도 엄청나게 긴장을 한 내 모습을 보고는 긴장감을 풀어주려 하신 소리인지 손끝 채혈이 제일 아픈 순간이라며 헌혈은 별거 아니라고 다독여주셨다.

 

 

 

1차 검사후에는 이렇게 손목에 혈액형이 적힌 띠를 둘러주셨다. 검사 후 바로 헌혈을 하는 줄 알았지만, 헌혈전에 당분 섭취는 필수인가 보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음료수 2잔을 먹으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는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장되고 무서워서 빠르게 두 잔을 원샷하고 간호사님께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말하자 헌혈이 시작되었다.

 

 

 

"자 아프지 않아요. 잠깐 따끔한 정도에요. 팔에 긴장 푸시고 쑤욱!"

어? 차마 혈관에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을 쳐다보지 못했는데 언제 찌르신건지 순식간에 들어간 주삿바늘의 통증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늘이 그렇게 두꺼운데도 손끝에서 채혈한 것보다 아프지 않았다. "헌혈해볼 만 한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시도해볼껄." 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헌혈을 처음하는 사람들은 전혈이라고 해서 피 350m를 뽑는 것 밖엔 할 수가 없다. 피를 뽑는다고 바로 병원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혹시 모를 병이 있는지 확인을 위해 피검사가 진행되야하기 때문이다. 해당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 우편으로 보내지며, 앱에서는 하루 뒤에도 확인이 가능하다. 헌혈을 해봤다면 혈소판이나 혈장만을 뽑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다만, 혈소판이나 혈장의 경우 피가 뽑힌 뒤 혈장이나 혈소판만 걸러진 후 남은 피는 다시 몸으로 들어가게 되다 보니 10분 정도 걸리는 전혈에 비해 시간은 최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전혈은 2개월에 한 번 뽑을 수 있으며, 혈장이나 혈소판은 2주 뒤 다시 뽑을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헌혈을 모두 마친 뒤 15분 정도를 휴식했다. 헌혈한 자리에 붙여놓은 밴드는 최소 4시간 동안은 붙이고 있어야 한다고 하길래 잠깐 앉아 쉬면서 테이블에 놓여있는 과자도 맛있게 먹었다. 내 생에 첫 헌혈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고 쉽고 시시하게 끝이 났다. 주사기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아픈게 두려웠지만 사실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아프지도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데 왜 나는 헌혈을 하기까지 이리도 오랜 시간이 걸린 건지 막연한 '공포'라는건 이렇게도 시시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헌혈의 좋은점은 뿌듯함만이 아니었는데, 헌혈 중 간호사님이 이 판을 보여주면서 원하는 기념 선물을 2가지 고를 수 있다고 하셨다. 이것이 웬 횡재냐! 여러 가지 상품들이 있었는데 그중 나는 메가박스 영화 쿠폰이랑 편의점 상품권을 선택했다.

 

 

 

이렇게 모든 절차가 끝이 나고 내생에 처음으로 헌혈 증서라는 것을 받게 되어 뿌듯해졌다. 헌혈 증서는 만일 내가 수술을 하게 되었을 경우 수혈비용을 공제받을 수 있으며, 원하는 수혈자에게도 이 헌혈 증서 양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분실하면 재발급이 불가능하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보관해둬야 겠다. 피를 뽑았을 뿐인데 선물을 받고, 내 피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하니 온종일 뿌듯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던 하루였다. 너무나 잘먹고 다녀서 그런지 어지러운 것도 없고ㅋㅋㅋ 앞으로도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겠다. 내 삶을 사랑해야 겠다.

 

 

※ 참고 : 헌혈 당일 병원약을 처방받은 기록이 있을 경우 약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에 상관없이 수혈한 피는 전량 폐기된다고 한다. 2차 헌혈을 위해 한달정도 비염약을 먹지 않았는데 헌혈하기 전에 병원에 들려 약을 처방 받고 헌혈 뒤 약을 먹으려고 한다라고 말씀 드리니 당일 헌혈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맥박도 비정상에 철분량도 미달이라 헌혈이 불가능했지만, 이게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헌혈을 하지 못하는 날이었다. 혹시나 헌혈을 하려거든 헌혈 당일 약처방은 받지 말고 비염약이라도 마지막 복용 후 최소 1주일 뒤에나 헌혈할 수 있다는 점 참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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