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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리대가 없어 곤란했던 날

by 박또니 2019.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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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단단해져서 옷자락이 유두를 스치기만 해도 쓰리고, 허리는 아프고 자꾸만 배탈이 나는 것이 조만간 생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생리'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나에게 빠르게 찾아왔다. 한 달에 한번 아니면 두 번.

한번 할 때 기본 일주일 정도. 나에겐 들쑥날쑥한 예정일을 맞추기란 어려운 존재다. 그렇기에 생리 일정을 딱히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다.

 

보통은 생리 첫째 날에는 피가 살짝 묻어 나올 정도가 일반적인데, 이번엔 첫날 치고는 양이 어찌나 많은지 자다가 봉변을 당할 정도였다. 해가 완전히 뜨지 않는 어두운 새벽. 축축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불에 피가 묻어 있었다. 세상에 준비도 없이 생각보다 빨리 시작된 것이다. "에이씨... 이거 바로 안 빨면 지우기 힘든데..."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이불 위에 샤워기를 틀었다.

 

이불 전체를 다 빨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피 묻은 부위에만 샴푸를 뿌리고 찬물로 조물거렸다. 피는 뜨거운 물을 뿌리면 응고되어 찬물에 바로 빨아야 한다. 그러자 흡사 살인사건이 일어난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핏물은 흐르는 물을 타고 하수구 쪽으로 흘러 내려갔다.

 

손빨래를 마친 이불은 빨래 건조대에 젖은 부위를 중심으로 널어두었다. 그리고 그제야 서랍을 뒤져 생리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찾고 찾아서 발견된 것은 팬티라이너 5장뿐... 온 집안을 찾아도 중형 이상의 생리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쩌나... 생리대 살 돈이 한 푼도 없는데..."

 

본가에 있을 땐 항상 엄마가 생리대를 사뒀기 때문에 굳이 내가 생리대를 사지 않아도 차고 넘치는 존재였다. 이것들이 개별로 방바닥에 굴러다닐 때에는 정리하기도 귀찮아 그냥 버릴 정도였는데 막상 필요할 때는 한 장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니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버린 생리대가 아까워 생각날 지경이었다. "미치겠네. 팬티라이너는 금방 다 쓸 거 같은데..."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팬티라이너와 두루마리 화장지를 돌돌 말아 한꺼번에 껴봤지만 모두 반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다 써버렸다. 덕분에 반나절만에 츄리닝 3개도 모두 빨아야 했다.

 

나는 백수라서 따로 돈쓸일이 없었기 때문에 집안에서의 생활에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터진 생리 앞에서는 생리대가 없는건, 사람이 기본적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며, 생리대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통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디어에서 생리대가 없어 고통받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생리대가 없어 당황한 적이 많았기에 단순히 그 아이들이 안타까웠고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겪어본 불편은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터진 생리에 곤란해하며 주변 동료들에게 "혹시 남는 생리대 없어?" 하고 물어보거나,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오기 전 피가 새지 않았으면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돈이 없어 생리대를 사지 못한다는건 돈이 있는데 생리가 없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못 피는 그런 기호의 문제도, 수염이 자라는데 면도기가 없어 정리하지 못하는 것과도 다른 것이었다. 흐르는 피를 막을 수 없어 온종일 신경 쓰이고, 찝찝하고, 샐까 봐 제대로 앉지 못하는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안정되지않는 고통이었다.

 

그런데 실제 내가 돈이 없어 생리대를 사지 못해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하루를 겪어보니 그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지를 아주 조금은 진심으로 와 닿는 경험을 겪어 본 것이다. 나는 집안에 있어도 자꾸만 흐르는 피를 처리하지 못해 이리 곤란해 했는데 피가흘러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하고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겪는 그 고통은 얼마나 될까?

 

결국, 나는 가족에게 기댈 수 밖에 없었고, 그날 밤이 돼서야 생리대를 차고 제대로 앉을 수가 있었다. 그동안엔 생리대를 차는 게 찝찝하고 기분이 나빴는데 생리대가 없는 하루를 겪어보니 오히려 생리대를 차고 나서 이렇게 상쾌하고 마음이 놓일 수가 있게 된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그 불편함을 알고 있어도 그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생리대가 없으면 제대로 된 삶을 살기가 어려워진다. 저소득층 학생들은 생리대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생리대 살 돈이 없어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2019년 정부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의 생리대 무상 지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각에선 생리대 무상지원이 과잉된 복지라는 말들을 한다. 구매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생리대를 지원하는 것은 과잉된 복지라고 생각하지만, 돈이 없어서 생리대를 차지 못하는 건 반드시 지원해줘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생리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데 적어도 아이들이 교육하는데 불편함은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으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이같이 행동하지만,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는 나도 국가의 한 사람으로서, 일원으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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