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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내가 겪은 포교 활동들

by 박또니 2020.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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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해도

나는 사람을 쉽게 믿는 순진한 사람에다

호기심도 많은 사람인 거 같다.

 

예전에 살던 동네는 유동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꼭 두 명씩 짝을 지어

포교 활동을 하는 각기 다른 종교인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때는 그들의 이야기가 신기해서

모두 다 대꾸해 주었다.

 

포교인 : 혹시 어머니의 하나님을 아세요?

나 : 우와! 하나님도 성별이 있어요? 그게뭐에요?

포교인 : (좋았어!) 자 블라블라~

 

재밌는 이야기 한편을 들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30분을 들었을까?

 

그들이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자기들 교회가 있는데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내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재밌었지만

난 딱히 종교라는 것 자체에는 믿음이 생기질 않아서

그만 빠이빠이하고 헤어졌다.

 

그 이후

이 동네의 포교 활동은 점점 진화되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교인임을 드러내지 않고

환경문제에 대해 설문을 해달라거나, 자신들은 대학생들인데

과제가 잘 되었는지 봐달라고 부탁하는 식이었다.

 

순진한 나는 곤란해하는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들의 설문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이 포교임이 드러난 순간에는

또다시 철벽을 치고 빠이빠이를 했다.

 

그리고 지금보다 삭막하지 않던 그 시절,

딱 봐도 집마다 선교를 하기 위해 초인종을 누르고 다니는 여자 교인 두 명이

나에게 물 한 잔만 얻어먹을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했는데

차마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나는

문을 열어 그녀들에게 물 한잔을 내주었고 설교도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들이 이야기해 준 성경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던 것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하 호호하며 듣게 되었다.

 

말하기에 지친 그녀들은 시간이 없다며 더 많은 이야기는

교회에 오면 이야기해 주겠다고 자신의 이름과 교회명을 나에게 건네주었고

오면 자신을 꼭 찾으라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집 밖을 나섰다.

 

사실 나도 만족스러웠다.

 

심심했던 참에 아주머니 두 분께서 들려주신 성경 이야기는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흥미로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역사와 신화를 참 좋아하는데

그들의 들려준 성경 이야기는 신화적인 면에서 재미있었을 뿐이었지

내게 종교적인 관심은 심어주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나도 모르는 새 포교라는 것에

넘어가 버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갓 성인이 된 20살 때

도를 믿으십니까에 낚여서 제사를 했던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10대일 때는 지금보다 더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제발 이 힘든 상황을 도와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매일 매일을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장을 보고 나온 어느 날,

두 명의 여성분이 나에게 접근해 자신들은 양로원에서

어른들을 도와드리고 있는 봉사자들인데

어른들께 드릴 '미역' 하나만 사줄 수 있겠느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마냥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고 생해서

기꺼이 이분들과 함께 다시 매장으로 가서 미역 한 묶음을 사서 드렸다.

미역을 사면서 뿌듯했다. 나도 좋은 일에 동참하는 것 같아서.

 

미역을 건네자 이들은 고마움의 표시로

나에게 관상을 봐준다고 했다.

나는 공짜로 관상을 봐준다기에 얼씨구나 좋다! 하고

근처 맥도날드로 들어가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일에 도움 주셔서 고마움에 봐 드리는 거예요."

 

그리곤 나에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며, 혹시 지금 가족들이

사이가 안 좋지 않냐며 아픈 내 마음을 쿡쿡 찔러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들은 그냥 툭 던진 말일 것이다.

맞으면 좋고, 아님 말고.

 

그런데 내가 그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수법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포교보다 교묘했다.

가족을 들먹이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지만

이들은 우리 가족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조상들의 기운을

좋게 풀어드려야 한다며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조상님 핑계를 대서라도 우리 가족이 화목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이후 그녀들은 누군가와 한참을 통화하더니

조상을 위한 제사 비용으로 내게 100만원을 요구했는데

아무리 털어봐도 가지고 있는 돈은 8만원 밖에 없다고 말하자

그럼 2만원을 채워서 10만원으로도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으니 함께 제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과자 사줄 테니 아줌마랑 가자"하는 유괴와 비슷한 거였는데

나는 또 깎아줬다는 기쁨에 얼씨구나 좋다! 하고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석촌에 있는 이들의 근거지로 갔다.

 

참 웃긴게 이들은 포교를 위해 서울에서 분당까지 왔던 것이다.

 

이들의 근거지는 주공 아파트로 보였는데 그 안에는

나 말고 포교 당한 사람들이 좀 있었다. 남자는 보이지 않은걸 보니

이곳은 여성들만 포교해놓은 지점인거 같았다.

 

이후 잘 차려진 제사상 앞에 나를 데리고 가서는

한복을 입혀 절을 하게 했다. 그리고 한지에 뭔가를 막 적더니

불에 태우게 함으로써 의식을 끝냈다.

 

나 나름대로 뿌듯했다.

이제 우리 가족은 화목해지겠지?

 


 

나를 포교한 두 명의 여인 중 한명은 25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제사 후 그녀가 나를 전담 마크하듯 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자신은 마음을 수련하는 학생인데

함께 마음수련을 해보지 않겠냐고. 마음수련? 괜찮겠다 싶어서 수락했다.

 

수련은 별거 없었다.

 

그냥 명상하듯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안나는데 딱히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있지 않아서

사실 이때까지도 나는 이게 포교인지도 몰랐다.

 

그리곤 그녀는 내가 가족을 대표해서 진행한 제사가 효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100일 동안 다른 사람에게는 이 일을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되며,

매일 이곳을 찾아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휴강 기간이었기에 할 일도 없으니 나는 며칠을 계속 수련을 나갔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이곳에 빠졌다고 생각을 했던 것인지 나와 같은 수련생들을 만날 기회라며

나를 데리고 잠실쪽에 있는 모임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공부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니 동아리 같은 건가? 라는 안일한 생각에

쫄래쫄래 따라갔던 나는 그곳에서 굉장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남녀가 모두 강당 바닥에 무릎 꿇어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고, 몇몇은 강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벽을 향해 기도하며 온갖 방언을 내뱉기 시작한 것이다.

 

아뿔싸...

 

그때서야 느낌이 싸했다.

이런 느낌을 전에도 몇 번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을 따라갔던 교회에서 들었던

청년들의 울부짖음과 내 바로 뒤에서 소름끼치게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대던 방언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때서 깨닫게 되었다.

아, 이거 뭔지 몰라도 종교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대순진리교였던 거 같다.)

 

갑자기 헛웃음이 났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ㅋㅋㅋㅋ

이후 교주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설교를 시작했는데

설교하는 내내 웃음을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뭔소리를 하나 잘 들어봤는데

그 내용은 교회에서 목사들이 하는 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뻔하디 뻔한 말들.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다시 한번 느꼈지만

내가 종교에 빠지지 못하는 건

아마 그들의 설교에 참신함이 부족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설교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강당에 빽빽하게 무릎 꿇고 앉아서 "믿습니다!"

하는 행위는 언제 봐도 너무 무섭다.

 

교주가 나간 뒤,

이들은 내가 교회에서 몇 번 경험해 본 것처럼

팀을 짜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새로 온 사람을 소개하고 환영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도 나는 현타 때문에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를 포교한 여성분의 전화번호를 수신 차단하고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해서 밀려오는 현타에 어찌나 웃음 나오는지

갑자기 제사 비용 10만원이 생각나면서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고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까운 10만원...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비싼 돈 주고

인생경험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틀 뒤 TV에서 제사와 관련된 사기사건으로

대순진리교 사건이 뉴스에 터져는데

조금만 빨리 뉴스에 터지지... 가족과 함께 뉴스를 보면서 다들 ㅉㅉ거릴 때

나는 분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아 내 10만원...

 

그 이후 나는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포교하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아예 사전 차단하고 내 갈길을 가게 되었다. 

 

그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의 포교 활동은

또 한 단계 진화가 되었다.

 


 

여전히 길거리에는 2인 1조로 두 명씩 짝지어 다니며

그 중 한 명은 크로스백을 메고 있어 초보자 티가 나는 포교 인들도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마치 오늘의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사람처럼 단순히 포교에 급급해서

길을 모르는 사람으로 위장하거나, 대뜸 영이 맑아 보인다는 식으로 다가와 포교를 한다.

 

그런데 이런식의 포교 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뒤

이들에 대한 거부반응이 상당히 많아지고 있는걸 깨달았는지 이제는 2인 1조에서

1인 체제의 새로운 포교 활동이 시작되었고, 크로스백도 메지 않는다.

 

나는 제작년까지 강남역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자정이 되면 강남역 11번 출구에 있는 할리스 카페 지하로 가서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하곤 했다.

 

그러던 며칠 후,

카페 내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여성 한분이 내 앞자리에 앉아도 괜찮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뭐 괜찮다고 앉으시라 했더니 고맙다며

다름이 아니라 자신이 요즘 심리 카페에서 심리상담을 배우고 있는데

내 심리를 한번 봐주겠다며 타로카드처럼 생긴 카드를

주섬주섬꺼내 몇개의 카드를 뽑아 보라는 것이다.

 

그녀의 재밌는 제안에 넘어난 나는 마침 머리도 식힐겸

신이나서 슬픈 표정의 카드만을 모두 뽑아보여줬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게 요즘 힘든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이때가 기회다라는 식으로 입에 모터를 단 듯

내 안에 있는 불만과 풀평을 그녀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웃긴게 그동안 친구에게도 못했던 이야기를 처음본 사람에게

모든걸 쏟아내듯 꺼내놨다. 다시는 안볼 사람이기에.

 

나혼자 얼마나 떠들었을까

그때가 한 새벽 두시쯤이었는데 점점 영혼이 없는 표정으로

"아~ 그렇구나, 힘드셨겠구나" 라고만 대답하는 그녀의 지친 기색을

깨달은 뒤에야 나는 말을 멈출 수 있었다.

 

아 속 시원했다.

 

그녀의 심리상담은 별거 없었다.

그냥 카드만 뽑게하고 내 이야기를 하게 한 것이었다.

솔직히 난 오늘의 운세같은걸 기대했는데.

 

내가 그녀의 시간을 모두 빼앗은 건지

그녀는 서둘러 나와의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했다.

그리곤 심리카페에 혹시 관심이 있냐,

배우고 싶으면 카페에 가입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카페라고 하길래 네이버 카페같은 것인줄 알고

가입하겠다고 사이트 주소가 어떻게 되느냐고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 카페는 아는사람을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는 곳이라

사이트에 들어가도 가입할 수가 없어서

자신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그럼 괜찮다고 하니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며 자신의 명함을 내어 주면서

내 전화번호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질척거리는게 더이상은 귀찮아서 그냥 카톡 아이디만 알려주고

명함을 받아 그녀를 서둘러 보냈다.

 

명함은 멀쩡했다.

 

인터넷에 검색되는 회사의 마케터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명함이야 얼마든지 돈주고 파면 그만인 것이 아닌가.

그래서 카톡을 수신차단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 후로 새벽마다 항상 카페에서 그녀들을 보게 되었다.

월요일은 내가 심리상담 받았던 그녀.

화요일은 또 새로운 1인의 그녀.

 

몇명이 돌아가면서 카페 내 포교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포교인도 역시나 내게 심리상담을 해주겠다고 했으나

이미 나는 한번 받아봤기에 흥미가 떨어져 거절을 했고

더이상 그녀들이 보기 싫어 할리스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 강남 교보문고 안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중

새로운 1인의 여성 포교인을 만나게 되었다.

 

평일 오후 4시인데도 불구하고

그 조용한 교보문고 안을 헤집고 다니며 홀로

사람들에게 포교를 하고 다니는 것이다.

 

진짜 포교인들 대단한 것 같다.

 

길거리를 떠나 이젠 카페 안에서, 서점 안에서까지

그들의 포교정신은 장소와 코로나 따위를 따지지 않고 있다.

마스크로 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포교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 그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가 될까?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다섯걸음에 한명 씩

포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발에 챌 듯이 많아졌다.

 

아우 귀찮아 죽겠다.

 

내가 순진하기는 한데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다행인거지

너무 많은 사이비와 종교인들이 자신을 믿으라는 통에

이젠 그러려니하는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짜증이 난다.

 

그럼에도

이런 포교활동에 당해 새로운 신도가 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천명은 생기고 있다고 한다.

 

포교활동의 수법들이 정말 악독하게 진화하고 있다.

종교는 개인의 자유라고 하지만 사람을 속이는 포교활동은

좀 국가에서 제재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나처럼 순진 멍청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은

딱 이들에게 사기당하기 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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