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는 연맹왕국 단계를 지나 중앙집권적인 고대 국가로 발전한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 연맹이 세력을 다투던 시기입니다. 고대 국가는 율령이 반포되고, 중앙 체제가 정비되며 정복 활동과 영토 확장으로 왕권이 강화되어 중앙 집권적인 국가로 성장한 국가를 말합니다. 7세기 말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기 전까지 정확히 고대 국가만 존재하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삼국 이외에는 거의 연맹 왕국 수준에서 멸망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통틀어 삼국시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흐름
※ 한강의 점령 순서 = 각 나라의 전성기
백제 근초고왕(4C) → 고구려 장수왕(5C) → 신라 진흥왕(6C)
고구려
기원전 37년 ~ 기원후 668년
고구려는 B.C 37년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졸본에서 세력을 키워 세운 나라입니다. 이후 나.당 연합에 멸망하기 전까지 주몽(동명왕)을 포함하여 총 28명의 왕이 고구려를 다스렸으나, 요약정리에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12명의 왕의 업적과 사회, 문화, 경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정리했습니다. 고구려 전체 왕조에 대해서는 아래 더보기를 참고해주세요.
회의기구 | 수상 | 관부 | 관등 | 지방 행정 조직 |
제가 회의 | 대대로 (막리지) |
내평(내무) 외평(외무) 주부(재정) |
10여 관등 | 5부(욕살, 처려근지 지방관 파견) 3경(국내성, 평양성, 한성) |
※ 지배층 : 왕족인 고씨 + 5부족 출신의 귀족으로 구성
고구려 전성기(5C) : 5세기,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며 한반도 남부와 만주를 아우르는 최대의 영토와 국력을 달성
※ 도읍 : 동명(성)왕 때 졸본(계루부) > 유리(성)왕 때 국내성 > 장수왕 때 평양으로 천도
태조왕 : 계루부 고씨 왕위 세습, 옥저 정복
★고국천왕 : 왕위 부자 상속제(형제 → 아들), 부족 성격의 5부 → 행정 5부로 개편, 을파소 등용, 진대법 실시(194) > 춘대추납
동천왕 :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환도성과 국내성 함락)
미천왕 : 서안평 점령(311), 낙랑군 및 대방군 축출(한사군 축출로 고조선 땅 회복)
고국원왕(전사) : 백제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으로 고국원왕 전사
★소수림왕 : 율령 반포(10여 관등), 태학 설립, 불교 수용
★광개토태왕 : 연호 사용 '영락', 왜의 침입으로 부터 신라 구원 후 내정 간섭(금관가야 쇠퇴, 호우명 그릇), 후연 격퇴(요동 진출), 거란 격퇴(만주 지역 차지), 백제 공격(한강 이북 차지)
★장수왕 : 평양 천도(427), 백제 개로왕 사살, 한강 유역 장악, 백제 한성 함락(475) → 충주(중원)고구려비 건립, 광개토대왕릉비 건립(414), 경당 설치(지방 사학 기관 유학+무술), 남진 정책과 동시에 남북조와 균형 외교
문자왕 : 부여 병합(494)
영양왕 : 아차산성 전투(아단성 전투)에서 온달 전사(590), 수양제 침입, 을지문덕의 살수대첩(612), 여수장우중문시, 역사서《유기》,《신집》편찬(이문진), 일본에 문화 전파(담징, 혜자)
영류왕 : 당나라 침입 대비 천리장성 축조(요동), 연개소문의 정변으로 폐위
보장왕 : 연개소문 정권 장악(막리지), 천리장성 완성(요동), 도교 권장(사신도), 당태종 침입, 양만춘의 안시성 전투(645), 나.당 연합에 멸망(668)
※ 태학 :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대학(귀족 자제의 교육 기관으로 유교의 경전과 문학, 무예 등을 교육)
※ 경당 : 고구려 사학 기관으로 지방의 평민층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어 경전(유학)과 궁술을 가르쳤다.
※ 광개토태왕릉비 : 중국 지란성 지안시에 위치하며 아들인 장수왕이 세운 비석이다.
※ 충주 중원 고구려비 : 국내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 비석으로 고구려가 한강 이남까지 진출한 내용이 적혀 있다.
고구려 전체 왕조 더보기 ▼
01대 동명(성)왕(B.C37~B.C19) : 고주몽, 추모왕으로도 불림, 졸본(계루부)을 도읍으로 함
02대 유리(명)왕(B.C19~A.D18) : 고주몽의 아들, 국내성 천도
03대 대무신왕(18~44) : 낙랑국 멸망(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
04대 민중왕(44~48)
05대 모본왕(48~53)
06대 태조(대)왕(53~146) : 고대 국가의 기틀 마련, 옥저 정복, 계루부 고씨 왕위 독점 세습(형제 상속)
07대 차대왕(146~165)
08대 신대왕(165~179)
09대 고국천왕(179~197) : 왕위 부자(아들) 세습, 을파소 등용, 진대법 실시(춘대추납), 부족 성격의 5부 → 행정 5부로 개편
10대 산상왕(197~227)
11대 동천왕(227~248) :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 > 환도성 함락
12대 중천왕(248~270) : 관나부인(후궁)
13대 서천왕(270~292)
14대 봉상왕(292~300)
15대 미천왕(300~331) : 서안평 점령(311), 낙랑군, 대방군 등 중국 군현 세력 축출(옛 고조선 땅 회복)
16대 고국원왕(331~371) : 전연 모용황의 침입, 백제와의 전쟁에서 근초고왕에게 죽음(고구려 유일 전쟁터에서 전사한 왕)
17대 소수림왕(371~384) : 최초 불교 도입(372), 태학 설립(372), 율령 반포(373) 등 국가 체제 정비
18대 고국양왕(384~391)
19대 광개토대왕(391~41) : 연호 '영락'사용, 후연 공격(요동과 만주 진출), 백제 공격(한강 이북 차지), 신라 구원(내정 간섭)
20대 장수왕(413~491) : 평양 천도(남진 정책), 승려 도림을 백제의 첩자로 보냄(백제 공격 시 중요 영향) > 한성 함락(백제 개로왕 전사), 경당 설립(지방 사학 기관),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충주 중원 고구려비 건립, 남북조와 균형 외교
21대 문자명왕(491~519) : 부여 병합(고구려 최대 영토 확보)
22대 안장왕(519~545)
23대 안원왕(531~545)
24대 양원왕(545~559)
25대 평원왕(559~590) : 일명 평강왕, 온달 장군의 장인(평강공주 설화), 평양 장안성으로 도읍 천도
26대 영양왕(590~618) : 온달 아단성 전투(590), 수나라(수양제)의 침입 > 을지문덕 살수대첩(612) > 고구려 승리, 역사서《신집》,《유기》편찬(이문진), 일본에 문화 전파(담징, 혜자)
27대 영류왕(618~642) : 천리장성 축조(요동), 연개소문의 정변(642), 연개소문에 의해 폐위 후 죽음
28대 보장왕(642~668) : 연개소문이 옹립, 당나라(당태종)의 침입 > 양만춘 안시성 전투(645) > 고구려 승리, 나.당 연합에 멸망(668)
[고구려 멸망 / 고구려 부흥 운동]
보덕왕(669~671) : 검모잠·고연무·안승이 고구려 부흥 운동을 진행(한반도에서 당나라를 내쫓으려는 신라가 적극 지원)
신라 문무왕이 '안승'을 금마저(익산)에 머물게 하고 고구려왕인 '보덕국왕'으로 책봉
고구려 멸망 이후
ㆍ안동도호부 설치(668) :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평양에 설치한 군정기관(신라가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고구려 부흥 운동에 지원)
ㆍ고구려 부흥 운동(670) : 검모잠, 고연무를 중심으로 안승을 왕으로 옹립 > 안승이 검모잠을 죽임(내부 분열) > 신라 문무왕이 안승을 고구려왕(보덕국왕)으로 책봉하고 금마저(익산)를 보덕국으로 칭함(674) > 보덕국의 가치가 없어 지자 신문왕에 의해 해체됨(683)
유물유적 :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사신도(강서대묘), 장군총(장수왕릉), 무용총 수렵도, 무용도, 접객도, 각저총 씨름도, 강서 수산리 고분 벽화, 충주 중원 고구려비(장수왕), 광개토대왕릉비(장수왕), 안학궁 터(장수왕)
※ 목탑을 주로 만들었으나 현존하는 탑 없음
백제
기원전 18년 ~ 기원후 660년
백제는 B.C 18년에 부여에서 고구려로 남하한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인 온조를 시조로 합니다. 삼국 중 가장 먼저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대륙과의 해상 무역을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하며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백제는 나.당 연합에 멸망하기 전까지 온조(온조왕)를 포함해 총 31명의 왕이 나라를 다스렸으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11명의 왕의 업적과 사회, 문화, 경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백제 전체 왕조에 대해서는 아래 더보기를 참고해주세요.
회의기구 | 수상 | 관부 | 관등 | 지방 행정 조직 |
정사암 회의 | 상좌평 | 6좌평 | 16관등 | 5부 5방 22담로 |
※ 지배층 : 왕족인 부여씨 + 8성 귀족으로 구성(진, 해, 연, 백, 사, 목, 협, 국씨)
백제 전성기(4C) : 4세기, 근초고왕은 마한을 정복하고 고구려를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으며, 황해도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동진과 왜(규슈 지방)과 해상 교역으로 전성기를 이끔
※ 도읍 : 온조왕 때 한성(서울) > 문주왕 때 웅진(공주) > 성왕 때 사비(부여)로 천도
★고이왕 : 율령 반포, 공복 제정(자.비.청), 관등제 정비(6좌평 16 관등), 목지국 점령
★근초고왕 : 왕위 부자 상속제, 마한 정복, 요서 및 산둥 진출, 규슈 진출 및 왜와 교류(아직기-한자, 왕인-천자문, 칠치도), 역사서《서기》편찬(고흥), 고구려 평양성 공격(고구려 고국원왕 전사)
침류왕 : 불교 수용
비유왕 : 나.제 동맹(433, 신라 눌지 마립간)
개로왕(전사) :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 함락(475) > 개로왕 전사
문주왕 : 웅진 천도(475)
동성왕 : 나.제 동맹 강화(493, 신라 소지 마립간 혼인 동맹), 탐라 복속
★무령왕(사마왕) : 22담로에 왕족 파견, 중국남조 양나라와 교류(남조의 영향을 받은 무령왕릉)
★성왕(전사) : 사비 천도(538), '남부여'로 국호 변경, 중앙관청을 22부 수도를 5부 지방을 5방으로 정비, 일본에 불교 전파(노리사치계), 신라와 연합으로 일시적인 한강 회복, 관산성 전투(554, 신라 진흥왕)
무왕 : 서동 선화공주 설화, 익산 미륵사 및 미륵사지 석탑 건립, 수.당.왜와 교류, 익산 천도 시도(실패)
의자왕 : 신라 대야성 함락(642), 계백의 황산벌 전투(660), 나.당 연합에 멸망(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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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대 온조왕(B.C18~A.D28) : 고구려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 위례성에서 백제(십제) 건국
02대 다루왕(28~77)
03대 기루왕(77~128)
04대 개루왕(128~166)
05대 초고왕(166~214)
06대 구수왕(214~234)
07대 사반왕(234)
08대 고이왕(234~286) : 왕위 형제 상속제, 최초 율령 반포, 6좌평/16관등제, 공복 제정, 목지국 점령, 한강 유역 장악
09대 책계왕(286~298)
10대 분서왕(298~304)
11대 비류왕(304~344)
12대 계왕(344~346)
13대 근초고왕(346~375) : 왕위 부자 상속제, 요서와 산둥 및 규슈 진출, 마한 정복,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 사살, 역사서《서기》편찬(고흥), 일본에 칠지도 하사
14대 근구수왕(375년~384)
15대 침류왕(384~385) : 불교 수용 및 공인(384)
16대 진사왕(385~392)
17대 아신왕(392~405)
18대 전지왕(405~420)
19대 구이신왕(420~427)
20대 비유왕(427~455) :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신라 눌지 마립간과 나.제 동맹 체결(433)
21대 개로왕(455~475) :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임(전사)
22대 문주왕(475~477) : 웅진 천도(475)
23대 삼근왕(477~479)
24대 동성왕(479~501) : 신라 소지 마립간과 결혼 동맹, 나.제 동맹 강화(493)
25대 무령왕(501~523) : 지방에 22담로 설치 후 왕족 파견, 중국 남조(양나라)와 교류, 무령왕릉(벽돌무덤)
26대 성왕(523~554) : 사비 천도(538), 국호 '남부여'로 변경, 22담로 설치, 5부 5방 체제 정비, 일본에 불교 전파(노리사치계), 신라 진흥왕과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하여 일시적으로 한강 유역을 회복했으나 진흥왕이 배신 >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 전사(554) > 나.제 동맹 결렬
27대 위덕왕(554~598)
28대 혜왕(598~599)
29대 법왕(599~600)
30대 무왕(600~641) : 서동과 선화공주 전설, 익산 미륵사 건립, 익산으로 천도 시도(실패)
31대 의자왕(641~660) : 신라 대야성 공격 후 함락(642), 계백의 황산벌 전투(660) > 신라 승리, 나.당 연합에 백제 멸망(660)
(백제 의자왕이 신라 40여개의 성을 공격하여 확보하는 바람에 신라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결국 당나라에 가서 나당동맹이 결성하게 되었다.)
[백제 멸망 후 / 백제 부흥 운동]
풍왕(660년~663) : 부여 풍 · 흑치상지 · 도침 · 복신 등 백제 부흥군과 왜 연합군이 나.당 연합에 맞서 백강전투(663)를 벌였으나, 나.당 연합군에 대패
백제 멸망 이후
ㆍ웅진도독부 설치(660) :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웅진(공주)에 설치한 군정기관
ㆍ백제 부흥 운동과 백강 전투(663) : 661년 흑치상지가 임존성을 거점으로 복신, 도침과 함께 나.당 연합군 공격 > 일본에 있던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여 4년에 걸친 부흥 운동을 진행했으나 나.당 연합군에 패(백강 전투 때 왜에서 백제에 4만 군대를 지원)
유물유적 : 석촌동 고분(계단식 돌무지무덤), 무령왕릉(벽돌무덤으로 진묘수와 금제관식이 함께 출토),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백제의 미소), 익산 미륵사지 석탑(목조 양식 석탑, 한국 최고 석탑, 내부에서 금제 사리 봉안기 발견),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목탑 양식 석탑, 평제탑, 소정방의 낙서, 일본의 탑 양식에 영향), 칠지도, 몽촌토성,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 사리감(창왕명), 백제 금동 대향로(불교+도교), 부여 사택지적비, 산수무늬 벽돌(도교)
신라
기원전 57년 ~ 기원후 676년
(삼국 통일 전)
신라는 진한의 소국 중 하나인 '사로국'에 뿌리가 있으며 박혁거세를 시조로 합니다.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지리적으로 문물을 수용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한 시기가 가장 늦었고, 전성기 또한 삼국 중 제일 늦은 6세기에 맞이하게 되었으나, 7세기 말 외세(당나라)와 연합하여 삼국을 통일했습니다.
신라 초기에는 박, 석, 김 세부족이 번갈아 왕위에 올랐으나 17대 내물왕(김씨)이 왕위 세습권을 독점하면서 이후 김씨왕조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박혁거세를 포함해 총 56명의 왕이 나라를 다스렸고 혈통에 따라서는 성골계 28왕, 진골계 8왕, 내물왕 방계 진골 20왕으로 나눠집니다. 이 파트에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11명의 왕의 업적과 사회, 문화, 경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리했으니 자세한 신라 전체 왕조에 대해서는 아래 더보기를 참고해주세요.
회의기구 | 수상 | 관부 | 관등 | 지방 행정 조직 |
화백 회의 (만장일치) |
상대등 | 10부 (집사부) |
17관등 | 6부 5주 2소경 |
※ 지배층 : 골품제를 기반으로 한 왕족(성골, 진골)과 귀족(6두품, 5두품)으로 구성
신라 전성기(6C) : 6세기, 진흥왕은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며 한강 상류를 확보하고, 함경도에 진출하고 화랑도를 조직하는 등 영토 확장과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
※ 도읍 : 경주(서라벌 금성)을 도읍으로 유지
※ 신라 왕호 변경 : 거서간(군장) → 차차웅(제사장) → 이사금(연장자) → 마립간(대군장) → 왕
[성골계 : 순수 왕족 혈통]
내물 마립간 : 김씨 왕위 세습, 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왜 격퇴(400), 고구려의 내정 간섭(호우명 그릇)
눌지 마립간 : 왕위 부자 상속제, 백제 비유왕과 나제동맹(433)
소지 마립간 : 백제 동성왕과 나제동맹 강화(493, 혼인동맹), 부족적 6촌 → 행정적 6부로 개편
★지증왕 : '신라'로 국호 변경, '왕' 호칭 사용,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512), 우경 장려, 순장 금지, 경주에 동시 · 동시전 설치
★법흥왕 : 연호 사용 '건원', 병부와 상대등 설치, 율령 반포, 골품제 정비, 관등제 정비(17 관등), 공복 제정(자.비.청.황), 불교 공인(이차돈의 순교), 금관가야 정복(532)
★진흥왕 : 연호 사용 '개국, 대창, 홍제', 화랑도 정비(국가 조직), 신라의 나.제 동맹 파기 > 백제와 관산성 전투 승리(554) > 한강 확보(단양 적성비, 북한산 순수비), 함경도 진출(마운령비, 황초령비), 황룡사 준공(불교 진흥), 대가야 정복(562), 역사서《국사》편찬(거칠부)
진평왕 : 아차산성 전투에서 고구려 온달 격퇴(590), 수와 통교(원광의 걸사표), 원광《세속오계 : 화랑도의 다섯 계율》전수, 위화부 설치, 칠숙 · 석품의 난
선덕여왕 : 백제 의자왕의 공격으로 대야성 함락(642), 분황사 준공(분황사 모전 석탑 건립),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자장의 건의), 첨성대 설치, 당과 수교, 비담과 염종의 난(647)
진덕여왕 : 집사부 설치(왕권 강화), 김춘추 나.당 동맹 결성(648)
[진골계 : 부모 중 한쪽이 성골이 아니거나, 왕과 왕비 중 한 명이 진골 출신]
★무열왕 : 최초의 진골 출신왕, 백제 정복(660), 사정부 설치
★문무왕 : 백강 전투(663), 고구려 정복(668), 당과 매소성 전투(675), 당과 기벌포 전투(676, 설인귀), 삼국 통일 완성(676), 외사정 설치, 상수리 제도
※ 골품제(법흥왕 때 정비) : 혈통에 따라 나눠진 신분제도로 집과 수레의 크기 등 일상 생활까지 규제
※ 위화부(진평왕) : 관리 인사 담당 관청
※ 집사부(진덕여왕) : 국왕 직속의 최고 행정 기관
※ 사정부(무열왕) : 중앙 관리 감찰
※ 외사정(문무왕) : 지방 관리 감찰
※ 상수리 제도(문무왕) : 지방 세력 견제를 위한 인질 제도로 고려의 '기인 제도'로 계승되었다.
신라 전체 왕조 더보기 ▼
거서간(군장)
01대 박혁거세 거서간(B.C 57~A.D 4)
차차웅(제사장)
02대 박남해 차차웅(4~24)
이사금(연장자)
03대 박유리 이사금(24~57)
04대 석탈해 이사금(57~80)
05대 박파사 이사금(80~112)
06대 박지마 이사금(112~134)
07대 박일성 이사금(134~154)
08대 박아달라 이사금(154~184)
09대 석벌휴 이사금(184~196)
10대 석내해 이사금(196~230)
11대 석조분 이사금(230~247)
12대 석첨해 이사금(247~261)
13대 김미추 이사금(261~284)
14대 석유례 이사금(284~298)
15대 석기림 이사금(298~310)
16대 석흘해 이사금(310~356)
마립간(대군장)
17대 내물 마립간(356~402) : 김씨 왕위 세습, 고구려 도움으로 왜 격퇴(고구려의 내정간섭, 호우명 그릇)
18대 실성 마립간(402~417)
19대 눌지 마립간(417~458) : 왕위 부자 상속제, 백제의 비유왕과 나제 동맹 체결(433)
20대 자비 마립간(458~479)
21대 소지 마립간(479~500) : 부족적 6촌 > 행정적 6부로 개편, 백제 동성왕과 결혼 동맹 체결(493)
왕(중국식 왕호 사용) - 성골 출신
22대 지증왕(500~514) : 왕 호칭 사용, 국호 '신라' 변경, 우산국 정벌(이사부), 우경 장려, 경주에 동시전 설치, 순장 금지
23대 법흥왕(514~540) : 연호 사용 : '건원', 병부와 상대등 설치, 관등제 실시(17관등), 골품제 정비, 공복 제정(자.비.청.황), 율령 반포, 불교 공인(이차돈의 순교), 금관가야 정복(532)
24대 진흥왕(540~576) : 연호 사용 : '개국','대창','홍제',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정비, 역사서 《국사》 편찬(거칠부), 단양 적성비(551), 진흥왕 순수비(북한산비, 창녕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건립, 대가야 정복(562)
25대 진지왕(576~579)
26대 진평왕(579~632) : 연호 사용 : '건복', 아차산성 전투(590), 수와 외교, 원광 '걸사표', 위화부 설치
27대 선덕여왕(632~647) : 연호 사용 : '인평', 첨성대 건립, 황룡사 9층 목탑(자장 건의)건립, 분황사 및 분황사 모전 석탑 건립, 백제 의자왕의 공격으로 대야성 함락(642), 비담과 염종의 난(647)
28대 진덕여왕(647~654) : 연호 사용 : '태화 > 영휘', 마지막 성골 왕, 김춘추 나당 동맹 체결(648), 집사부 설치
왕(중국식 왕호 사용) - 진골 출신
29대 무열왕(654~661) : 최초 진골 출신 왕, 상대등 약화, 사정부 설치, 백제 멸망(660)
30대 문무왕(661~681) : 백강전투(663), 고구려 멸망(668), 삼국 통일(676), 외사정 파견(지방 감찰관)
31대 신문왕(681~692) : 왕권 강화, 김흠돌의 난(귀족 세력 숙청), 관료전 지급, 녹읍 폐지, 설총 《화왕계》지음, 만파식적 설화, 행정을 9주 5소경으로 나누고 군사를 9서당 10정으로 함, '국학' 설치(682), 문무왕릉(불교식 수중릉)
32대 효소왕(692~702)
33대 성덕왕(702~737) : 백성에게 정전 지급(722)
34대 효성왕(737~742)
35대 경덕왕(742~765) : 녹읍 부활(왕권 ↓), 관직 및 관료의 칭호를 중국식으로 변경, 국학을 '태학감'으로 개칭, 박사와 조교 설치, 불국사와 석굴암 축조(김대성), 성덕대왕 신종 제작
36대 혜공왕(765~780) : 마지막 진골 출신 왕, 96각간의 난(768), 성덕대왕 신종 완성(771), 어린 나이에 살해됨, 태학감을 '국학'으로 개칭
왕(중국식 왕호 사용) - 내물왕 방계 진골 출신(심각한 왕위 다툼)
37대 선덕왕(780~785) : 왕권 약화, 상대등 강화
38대 원성왕(785~798) : 독서삼품과 시행(실패)
39대 소성왕(798~800)
40대 애장왕(681~692)
41대 헌덕왕(809~826) : 김헌창의 난(822,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킴)
42대 흥덕왕(826~836) : 장보고 완도에 청해진 설치(828), 산둥 반도에 법화원(사찰) 설치, 사치 금지령 반포
43대 희강왕(836~838)
44대 민애왕(838~839)
45대 신무왕(839~839)
46대 문성왕(839~857) : 장보고의 난(846)
47대 헌안왕(857~861)
48대 경문왕(861~875)
49대 헌강왕(875~886)
50대 정강왕(886~887)
51대 진성여왕(887~897) : 마지막 여왕, 최치원의 시무 10조, 원종과 애노의 난(889), 견훤의 난(892), 적고적의 난(896), 등 각종 농민 반란 발생
52대 효공왕(897~912)
53대 신덕왕(912~917) : 박씨 왕조
54대 경명왕(917~924) : 박씨 왕조
55대 경애왕(924~927) : 박씨 왕조, 포석정에서 견훤에게 피살
56대 경순왕(927~935) : 고려에 항복, 신라 멸망, 경순왕은 고려의 경주 사심관이 됨
신라 당나라 동맹 이후
ㆍ계림대도독부 설치(663) : 당나라가 신라를 지배할 목적으로 경주(금성)에 설치한 군정기관으로 신라는 이후 고구려, 백제의 유민들과 연합하여 당나라의 침략 세력을 물리치고 국토를 통일
※ 진흥왕의 적성비와 순수비
적성비 : 영토 확장과 관련된 비석으로 '단양 적성비'가 있다.순수비 : 왕이 직접 영토를 순찰하며 왕권 강화를 위해 제작한 비석으로 '북한산 순수비', '창녕비', '황초령비', '마운령비'가 있다.
유물유적 : 호우명 그릇, 단양 적성비, 북한산비, 마운령비, 함초령비, 창녕비, 황룡사 9층 목탑, 첨성대, 분황사 모전 석탑, 수중릉, 월지와 안압지, 포석정, 천마총, 천마도, 불국사, 석굴암, 석가탑(무주정광대다라니경, 금동불 입상), 다보탑, 만파식적, 감은사지 3층 석탑(통일신라 석탑의 원형 마련), 진전사지 3층 석탑, 쌍봉사 철감선사탑 등
삼국의 고분 양식 변화
고구려 : 돌무지무덤(장군총) → 굴식 돌방무덤(쌍영총, 무용총)
백제 : 돌무지무덤(석촌동 고분) → 굴식 돌방 벽돌무덤(중국남조의 영향, 무령왕릉) → 굴식 돌방무덤
신라 : 돌무지덧널무덤(천마총, 호우총) →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 유행(수중릉) → 굴식 돌방무덤(김유신묘)
※ 고분의 양식은 후기로 갈수록 '굴식 돌방무덤'으로 통일
※ 총(塚), 릉(陵), 묘(墓), 고분(古墳)의 차이
총 : 왕과 왕비의 무덤이라고 추측되는 경우(천마총, 장군총)
릉 : 왕이나 왕후가 정확하게 알려진 무덤(무령왕릉)
묘 : 왕과 왕비를 제외한 왕족이나 일반인의 무덤(김유신묘, 정효공주묘)
고분 :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는 고대의 무덤(석촌동 고분)
삼국의 불교 수용과 문화 전파
<고구려>
불교 수용 : 4C 소수림왕(372년) 전진의 승려 순도가 전파
문화 전파 :
ㆍ혜자 : 영양왕(595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됨
ㆍ담징 : 영양왕(610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 전파, 종이와 먹 제조법 전수
ㆍ 고분벽화 : 고구려의 수산리 고분 벽화가 일본의 타카마쓰 고분 벽화에 영향을 줌
<백제>
불교 수용 : 4C 침류왕(384년) 동진의 승려 마라난타가 전파
문화 전파 :
ㆍ 아직기 : 근초고왕 때 일본으로 건너가 한자와 유학 전파
ㆍ 왕인 : 근초고왕 때 일본으로 건너가《천자문》,《논어》등을 전하고 강론
ㆍ 노리사치계 : 성왕(552년) 때 한반도 최초로 일본에 불상과 불교 전파
ㆍ 기술 전수 : 5경박사, 의박사, 역박사, 천문박사 등 다양한 기술자 파견 > 백제식 가람 양식(사원 건축 양식)
<신라>
불교 수용 : 6C 법흥왕(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눌지 마립간 때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가 전파했으나 공인되지 않음)
문화 전파 :
ㆍ 원광 : 진평왕 때 수나라에 군사를 요청하는《걸사표》와 화랑의 실천 덕목인 《세속5계》를 지음
ㆍ 자장 : 선덕여왕 때 황룡사 9층 목탑 설립 건의
ㆍ 기술 전수 : 조선술(배 제작)과 축제술(제방 축조)을 일본에 전달 > 일본에 '한인의 연못' 지명의 유래 관련
가야
42년 ~ 562년
금관가야 : 김수로왕이 건국(구지봉과 구지가의 전래), 왕비 허황옥(인도 아유타국), 김해를 주된 지역으로 함
대가야 : 이진아시왕이 건국, 고령을 주된 세력으로 함
세력이동 : 김해의 금관가야가 전기 가야 연맹 주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돕는 과정에서 금관가야 쇠퇴 → 이후 고령의 대가야가 후기 가야 연맹 주도 → 신라 법흥왕이 금관가야 복속(김구해, 532 멸망) → 신라 진흥왕 때 대가야 복속(도설지, 562 멸망) 후 모든 가야 연맹 완전 해체
사회경제 : 벼농사 발달, 토기 제작 기술 발달, 풍부한 철 생산량으로 낙랑과 왜에 수출(중계 무역 발달)
관련인물 : 김유신(금관가야 김구해의 손자로 법흥왕때 신라 진골로 편입), 우륵(가야금)
유물유적 : 호계사 파사 석탑(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왕비 허황옥이 가져옴), 대동면 덕산리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대성동 고분군 판갑옷, 대성동 고분군 청동 솥, 복천동 고분군 말머리 가리개, 지산동 고분군 판갑옷과 투구, 지산동 고분군 금동관
※ 가야의 토기기술은 일본 아스카 문화에 영향을 줌(스에키 토기)
삼국시대 요점정리 완료.
2025년 02월 01일 오타 수정 및 이미지 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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