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 김수현
# 분야 : 에세이
# 출간 : 마음의숲 / 2016년
# 평점 : 8.62점(네이버)
이 책이 상당히 유명해진 뒤에야 책을 쓴 작가가 나와 스쳐 지나간 인연 중 한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27살 때 모 대기업에서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경력직이었으나 신입과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새로운 세상에 홀로 떨어진 원시인처럼 그곳에 적응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생전 처음 경험한 플렉서블한 근무 환경, 해외파인 그들의 스펙에 비하면 비루하다 못해 부끄러운 나의 스펙, 명품 핸드백이 일상인 그들의 가방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나의 에코백, 그리고 은근히 내게 전해지는 텃세까지. 그러다 보니 열정적으로 일을 배우려 했던 내 의지는 곧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잠식당해 점점 겉돌게 되었다.
그러던 중 30살 초반의 '그녀'가 우리팀 인턴으로 들어 왔다. 그녀는 보통의 인턴 친구들보다 다소 나이가 있는 편이었는데 어린 친구들과 함께 밤새 인턴 과제를 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고, 아침마다 웃는 얼굴로 맞아주던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때론 기가 죽어 힘들어하던 내게 차분한 말투로 조언을 해주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그녀의 외모만 보고 '쎈언니'가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에 잠시 그녀에 대해 편견을 갖기도 했었다.) 그녀는 내가 질투를 느꼈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그림을 잘 그리던 사람이었고, 20대였던 나보다 더 열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기에 내게는 그녀가 너무나 멋있고 빛나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퇴사를 하기 전, 그녀는 자신이 책을 쓰고 있다며 곧 책이 출판된다는 말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 책이 《180도》 였던걸로 기억한다. 디자이너인 그녀가 책을 썼다고 하길래 디자인과 관련된 책인 줄 알았는데 단순히 그림에 관한 책이 아닌, 자신의 삶과 철학이 담긴 에세이라 놀랐었다. 그동안 글을 쓴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만이 쓰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게는 그저 '회사 사람' 중 한사람이었던 그녀가 책을 썼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서점에서 오랜만에 그녀의 이름이 적힌 이 책을 발견하고는 단순히 유명 작가가 쓴 책이 아닌, 그때 그 빛나던 기억 속의 그녀의 모습 떠올라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보면 작가가 나와 동년배라서 그런지, 아니면 비슷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내 삶과 상당히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의외였던 것은 그녀가 마냥 밝고 빛나는 사람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녀도 나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것에 "사람 사는거 다 똑같구나. 모두가 다 비슷한 인생사를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깨닫게 해주었다.
작가는 사회 심리학을 읽기 편한 에세이로 풀어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상당히 쉽게 읽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이다 보면 어느 순간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알라딘 서점에서 통계를 내린 구매 분포도를 살펴보니 여성의 구매비율이 상당히 높았는데, 놀라운 건 젊은 여성들의 구매 비율이 높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40대의 중년 여성들의 구매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비혼주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미혼의 40대 여성보다는 기혼의 40대 여성이 더 많이 존재하고 있을 터, 그런데 이 책이 그녀들에게 위안과 공감을 주었다는 것은 그녀들이 단순히 엄마로서 살아가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찾고 싶은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말해주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책 제목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처럼 말이다.
중간 중간에 그려진 작가의 그림들은 귀엽지만 그 내용은 묵직하며 시원하다.
사실 책 내용은 기존의 '자존감'과 관련된 책들과 별반 다를것이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구매평을 읽어보면 모두 하나같이 이 책을 통해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며 입을 모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기존의 자기계발서와 같은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이 책의 장점은 남다른 작가의 '필력'에 있다. 작가는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과 사이다 같은 한 방의 잽을 날리는 시원한 문체를 가지고 있어 다른 책들보다 더 많은 공감과 위로를 독자에게 안겨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나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길지라도
나는 나를 존중하고 나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도 된다는 거였다.
이 책은 내가 느꼈던 초라함의 이유이자,
나를 초라하게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 작가의 프롤로그 중에서 -
그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보통의 사람이며 글이라는 것은 누구나 쓸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 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상당히 겸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고는 있는 것이 있지만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내 생각을 공감받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위로와 자신감을 갖게 되는지를 작가는 잘 아는 사람 같다. 흡사 친구에게 둘 중 하나의 고민을 털어놨을 때 내가 친구에게 확인 받고 싶은 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답이 아닌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그러니 너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어!"라는 선택의 확신과 공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딱딱하지 않고 상당히 친근하다. 나에게는 언니 같은, 40대 이상의 여성들에게는 친구 같은 그녀의 답변은 사회라는 거대한 숲 속에 떨어진 '우리'를 현재에 머무르지만은 않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노력이 경시될 수는 없으나,
노력은 성공의 마스터키가 아닌 성공의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고,
노력만으로는 큰 성공을 거둔 이가 있다고 해도 소수의 예외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력 = 능력 = 성공>이라는 등식은 <게으름 = 무능 = 가난>이라는
등식으로 자동 연산되어서 가난의 이유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차별과 계급을 정당화 한다.
- P.21 떳떳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것 -
우리 삶에서 곧 사라질 존재들에게 마음의 에너지를 쏟는 것 역시 감정의 낭비다.
마음 졸여도, 끙끙거려도, 미워해도 그들은 어차피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 P.26 인생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것 -
그것이 당신을 향한 비난이라면 해야할 일은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게 아니라
비난의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
그 비난이 진실이라면 안 좋은 점을 고치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그저 상대 내면의 문제에서 비롯된 거짓이라면 그냥 개가 짓는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 P.33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것 -
극혐, 설명충, 급식충, 유족충, 맘충, 보슬아치, 한남충 등
수많은 모욕과 혐오를 담은 단어들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벌레가 아닌 사람으로 살기 참 어렵다.
이러한 일상적인 혐오에 대해 《모멸감》의 저자 김찬호 교수는
왠만큼 잘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타인에 대한 모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희미해진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열패감을 보상받기 위해,
얄팍한 우월감을 맛보기 위해 타인을 모멸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찌질한가.
그리고 그 혐오에 모멸감을 느낀 이들은
다시 혐오를 미러링(mirroring)하고 복제해간다.
그결과 인터넷에선 누가 더 혐오스러운가에 대한 끝없는 경쟁이 펼쳐진다.
단언컨데,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는 세상에선 그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 P.36 모욕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 -
한심하고 부끄러워할 건 자신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은 아닐지라도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걸 견뎌야 할 지라도
변명을 덜어낸 진짜 자기 자신과 마주하자. 가장 중요한 건 다시 시작하는데 있다.
- P.42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을 것 -
자존감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신뢰이자 행복을 누릴 만한 사람이라 여기는 자기 존중감이다.
이건 정신승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자신을 신뢰하긴 어렵고,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을 존중하기도 어렵다.
자존감은 스스로가 믿고 존중한 내면 세계를 세우고 그 신념을 바탕으로
삶을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삶의 일련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내면의 힘이다.
- P.71 단단한 자존감을 다질 것 -
인생도 닌텐도 게임처럼 리셋하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으니, 죽은 듯 살아가야 할까.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끝에는 '그래도 나는 살아가고 싶다'는 결론에 닿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애틋했고 내가 잘되길 바랐다.
너무 지쳐서, 내 자신이 지긋지긋해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런 나 자신을 내팽겨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구도 내 삶을 대신 돌봐주지 않는다.
상처가 생겼다는 이유로,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내 삶이 홀로 울고 있다면 그건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당신에겐 가장 애틋한 당신의 삶이기에 잘살아내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 P.126 문제를 안고도 살아가는 법을 배울것 -
한 순간에 일어나는 혁명은 없고 변화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요요 현상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지속적인 관리이듯
때론 뒷걸음에, 때론 제자리 걸음에 답답하고 조바심이 날 지라도
변화를 위해선 지속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일이 그랬다. 변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은 지치지 않는 것이다.
- P.212 조바심은 버릴 것 -
억압으로 화합된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문제는 싸움이나 국론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 못해
문제의 해결책과 제대로 된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
싸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싸움의 방법을 채득해야 한다.
비난이 아닌 대안이 필요하며, 모욕이 아닌 설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맨날 싸워서가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 못함에 있다.
- P.214 잘 싸우는 법을 배울 것 -
근거 없는 낙관은 사실 현실 회피에 가까웠다. 한때 우리 사회는 낙관로자로 넘쳐났다.
자기계발서를 통해 상공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성공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감을 잃은 희망은 아편에 불과하다. 희망을 품고 싶다면 방법을 찾아라.
그리고 방법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다면 그 고단함을 견더내라.
당신이 해야할 일은 막연한 희망이나 대안이 없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 P.219 희망의 근거를 만들 것 -
세상엔 참 미친 인간도 한심한 인간도 많다.
그 사람들은 어린 시절 우리 내면에 상처를 주기도 했고,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우리를 잡아 끌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는 건
그 과거에 머물러 뒤늦게 보상받기 위함도 아니다.
그 고리를 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는 무력한 어린 아이가 아니며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있다.
더 이상 과거에 붙잡혀 살고 싶지 않다면
과거의 연약했던 나에게 위로를,
미성숙했던 그 모든 존재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 P.261 지나간 과거와 작별할 것 -
어렸을 적 눈물이 많은 남동생에게 우리 가족은 "사내 자식이 툭하면 우네?"라고 야단치기가 바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생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동생이 야단을 맞고 운 것은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었고, 동시에 자신이 얘기하지 않았던 것을 알아주니 감정이 북받쳐서 울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동생의 개인적인 성향은 무시한채 남동생을 '사내'라는 일반적인 틀에 묶어 '사내 = 울지 않아야 한다.' 로 남동생을 규정했던 것이다. 남동생은 커가면서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사내로 자라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감수성은 풍부하기에 보통의 남성보다 눈물이 많은 사람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동생이 눈물을 흘려도 울지 말라고 소리치는 대신에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사회라는 틀 안에 가두려는 모습이 아닌, 개인의 성향과 개성을 존중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본인 스스로의 존중이든, 타인으로 부터의 존중이든.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가 '나'를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에게는 좋은점도 있지만 나쁜점은 상당히 많다. 그것을 애써 부정해왔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가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있는 나쁜점을 인정하고 당당히 마주하는 자세부터 가져야 겠다. 나 스스로의 혐오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살아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 책은 사회 기준에 자신 스스로를 가두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당신은 당신에게 가장 애틋한 존재이며, 불행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기에 자신 스스로를 혐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다른 방법은 없다. 상처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꾸준히 나아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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