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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내가 만났던 전 남자친구들

by 박또니 2019.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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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사랑은 20살때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만나 의형제처럼 지내던 5살 연상의 남자와 어영부영 CC가 되어

난생 처음으로 연애라는 것을 해봤는데 그 사람도 연애 경험은 별로 없었던 것인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우리는 연인이라기보다는 베스트프렌드처럼

2년이 넘는 시간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점점 그가 날 여자가 아닌 귀찮은 대상으로 대하는걸 알게 되었다.

나와 만나는 것보단 집에서 게임 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의 친구들은 여자를 참 좋아했는데, 그도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먼저 헤어져달라고 했으면 이처럼 초라한 감정은 들지 않았을텐데,

자신의 입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게 미안했는지 그는 나를 방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헤어져주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나 돈필요하다. 얼마 빌려줄 수 있느냐?

지금 당장 나한테 100만원이라도 빌려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면 우리 헤어지자."

 

황당 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직장인 이었고 그는 학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돈을 빌려달라고 한 말이 뜬금없이 100만원.

당연히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러나 나와 헤어지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의 싸이월드엔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새 여자친구의 사진이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나와 사겼을 땐 낯간지러워서 한번도 다정히 말해주지 않았던 '사랑해'라는 말이 여기저기 쓰여져 있었고,

나에겐 한번도 불러준 적이 없던 '자기야'라는 애칭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몰래 훔쳐보고 있던 내 자신이 너무나 어이가 없고 웃겨서 헛웃음이 났다. 

"역시나..." 2년을 조금 넘긴 내 첫사랑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보통의 여자들은 첫사랑보다 마지막 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지만,

나에겐 첫사랑이 제일 아팠고, 그만큼 설렜던 감정도 없었기에 시간이 지나도

그 때 그시절을 쉽게 잊지 못하고 있었다.

첫사랑인 그도 그리웠지만, 그 때의 순수했던 내가 더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첫사랑과 헤어진 뒤 몇년이 지났을까?

한참이 지나도 가끔 그를 궁금해하는 나에게 대학시절 그와 함께 어울렸던 남자 동기이자

나와도 친구인 남자를 통해 놀랄만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말 안했는데 그형, 너랑 사귈 때 동기 남자들한테 너에 대한거 다 얘기하고 다녔어..."

순수했던 내 첫사랑의 기억이 나쁜 자식이라는 배신감으로 덧칠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최근 8년만에 그사람에게서 잘 지내느냐는 연락이 왔으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쯤은 보고싶었던 사람이었으나, 그와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가 않다.

 

 

첫사랑과의 연애가 끝나고 나는 3달 이상 넘어가는 연애를 하지 못했다.

애정결핍성향이 있기에 남자가 나에게 조금만 잘해주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일명 '금사빠'가 되었지만,

좋아하는 감정과 별개로 현실적인 방어기능은 따로 작동했기에 금방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아무 조건 없이 상대방을 좋아했지만, 그와의 긍정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모든 남자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솔직히 내 방어기능에 걸리는 것이라곤 별거 없었다.

나는 상대방의 외모, 돈도, 명예도 보지 않았다. 그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기를.

내가 사랑받는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기를. 그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참 힘들었던 거 같다.

 

최근에 만났던 남자친구와도 3달도 되지 않아 헤어졌다.

그는 내 기준에 잘 사는 집안이었고, 머리도 좋고 사랑을 많이 주려던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나에게 놀랄만큼 들이댔기에 나는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당황했던 마음이 컸었지만,

점차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로가 좋아하는 마음이 똑같은 위치에

다다랐을 때 그는 이제는 나에게 애정을 그만 주어도 된다고 생각했다보다.

 

그는 나와 만난지 한달도 되지 않아 MBA 준비로 연애하기 힘드니,한달에 한번만 만나도 괜찮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솔직히 나는 이제 막 그와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그가 이런 제안을 하니 너무나도 미워졌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만나는게 그리 어려운 걸까? 1년을 만나고 이런 제안을 했다면 그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겨우 만난지 한달만에 나를 버려두다니...

 

그럼에도 그를 좋아했기에 그가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나는 나대로 홀로 여행을 떠나면서도

밤에는 그와 연락하며 같이 왔다면 좋았을것을.. 이라며 주절 주절 하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는 이것조차 어려웠나보다. 연락하는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리곤 내네 "나는 영어를 쓰는 뇌와 한국어를 쓰는 뇌를 번갈아 가며 쓰기 위해서는 부팅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마디로 나와 연락하기 위해서는 언어회로를 바꿔야하는 시간이 걸리기에

연락하지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점점 그에게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나보다.

내가 연락을 하지 않으면 하루에 한번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이와 별개로 그가 공부하고 있는 그의 집에 놀러갔던 날,

그의 컴퓨터를 하던 중 모니터 우측에 켜져있는 카톡에서 그와 그의 부모님이 나누던 대화 내용을 보고는

숨어있던 방어기능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걔는 무슨 대학을 나왔니? 상품도 포장지가 좋아야 하는데 왜 아무 여자나 만나는거니?"

사람을 상품처럼 브랜드만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그의 부모의 모습에 솔직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런 부모님의 가치를 보고 배웠을 그가 미워져버렸다. 그 상처는 새로운 내마음에 벽을 만들어 놓았다.

 

여러모로 그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고,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하루에 연락을 그리 많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번 통화하는데 오래걸리는거면 모를까. 나 또한 회사를 쉬면서 들어간

사이버 대학에서의 시험과제에 허덕이고 있었고, 워낙 집에있는걸 좋아했기에

그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해놓고

나를 밀어내는 그의모습을 보니 심통을 부렸나보다.

 

하루에 끝은 그와 통화로 끝내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그에겐 부담이었나보다.

 

그런데 나와 연락은 하지 않으면서 게임에 접속한 그를 보곤

또 다시 나는 남자에 대한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파티가 있었다는 것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것은 SNS를 보고 알게 했다.

그래서 나는 점점 그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게 되었고,

그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굳이 나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나보다.

이럴꺼면 나를 왜 흔들어 놓고, 나에게 왜 사귀자고 한것인지.

 

혼자인것보다 둘이 있는게 더 외로웠다. 이사람과 사귀면서 너무나 외로웠다.

개인주의자였던 나를 사람에게 의지하게 만들어 놓고선,

나를 봐주지 않으니 사랑을 구걸하게 만들어 놓고선, 나를 구질구질하게 만들어놓고선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마" 이 문자를 마지막으로 그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와 만나면서 최선을 다해 구질구질하게 그를 붙잡아 봤고, 그를 사랑해봤다.

그러나 이런 취급을 당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 지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았고,

다시 예전처럼 혼자 영화도 보고 밀렸던 집안일도 하면서 나를 추스릴 수 있었다.

오히려 그의 한마디에 그동안 나는 나를 내팽겨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자존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잘지내보자고 연락온 그의 말에 감정의 동요없이 

"고마웠다. 안녕"이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다. 

그도 미련없다는 듯 잘지내라며 우리는 전화를 통해 헤어지게 되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를 좋아했지만, 그는 나를 구질구질하게 만들었던 내 인생 최악의 남자가 되었다.

사랑은 구걸하는게 아니라는 걸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상황은 또 이상하게 흘러갔다.

 

그가 나에 대한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왜곡하고 변명하는 하나의 도구로써

책을 썼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 실명을 써서.

 

그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헤어진 연인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그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책 안에는 나의 수치스러움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를 나에게 소개시켜준 친구는 그에게 받은 책을 읽고나서 나에게 물었다. "이거 너 아니야?"

그가 옴니버스식으로 쓴 책 안에는 나에 대한 그의 변명이 적혀있었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오직 나를 생떼가 많은 어린 여자로 몰아가고 있는 글을 보니

너무나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더 나를 화나게 하고 수치스럽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우리만의 은밀한 이야기. 그것도 왜 굳이 실명을 써서 남겨놓았는지

그리곤 왜 이런 책을, 내게 전해주라고 한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전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적을 것이라면

최소한 실명을 언급하지 않는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아무리 팩션이라고 치장해도 명예훼손으로 신고한다면 

민사로 다퉈볼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그는 모르는것일까?

독립출판물이 개인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용도는 될수가 있어도 

개인 소장용이 아닌이상 적어도 그 손끝에서 탄생하는 글을 통해

당사자에게 수치감과 모욕감을 주는 일은 없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람에 대한 예의이고 존중이다.

만일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존중도 생각없이 단순히 책을 써내려갔다면 

그것은 작품이 아니라 명예훼손을 불러일으키는 한낱 증거품이 될 것이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는

또 다시 그의 펜을 통해 헤어지고 나서도 상처를 남겨주고 말았다.

정말 최악의 남자친구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넌 정말 못생겼었어.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희곡'이라고 하는거야 멍청아."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게 겁이 난다.

왜 내게는 이런 저질스러운 남자밖에 없었던 것일까?

 

사랑만 하기도 참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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