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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2019년 네번째 책리뷰 :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by 박또니 2019.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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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 작가 : 하야마 아마리

# 분류 : 에세이

# 출간 : 예담 / 2012년

# 평점 : 9.2점(교보문고 평점)

 

 

책은 읽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 책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 읽는 이의 마음에 여유가 넘칠 때는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사는 주인공에게 단순히 동정심을 느끼게 되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책을 통해 자신을 위로받기도 한다.

 

이 책은 내가 힘들 때마다 읽었던 책이다. 보통 책을 읽고 나면 두 번, 세 번 읽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난 항상 이 책을 곁에 두고 힘들 때마다 찾아 읽어보며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고 있다. 이 책은 드라마 《미생》에서 극 중 안영이(강소라)가 읽어서 유명해진 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한창 유명할 때에는 읽어볼 생각도 없다가 막상 내가 스물아홉이 되고 나서야 책 제목에 이끌려 구매를 하게 되었다. 스물아홉이라는 인생의 혼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의 제목만으로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니깐.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나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에 있다. 한국에서 번역을 잘한 것인지, 긴 문장은 쉽게 읽지 못하는 내가 같은 줄을 중복해서 읽은 적이 없이 술술 읽어내려갔다. 게다가 글의 양이 많지 않고 문단마다 호흡이 길지 않아 책을 오랫동안 읽게 되는 사람들도 빠르고 쉽게 읽을 수가 있는 책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변변한 직장도 없고,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애인에게는 버림받고, 그 실연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는 상황까지 겹치자 주인공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지속된 폭식으로 못생기고 뚱뚱한 외톨이가 되었다. 간절함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의 스물 아홉번 째 생일날. 혼자만의 파티를 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산 딸기 조각 케이크를 먹으려는 순간 제일 탐스러웠던 딸기가 굴러떨어져 먼지로 더러워지자 마음의 끈을 놓아버린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에 절망하여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죽을 용기마저 내지 못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며 텔레비전을 무심코 보자 눈 앞에 펼쳐진 너무도 아름다운 세계,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로 멋진 순간을 맛본 뒤에 죽으리라 결심하고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게 된다. 이후 주인공은 카지노에서 쓸 목표 금액을 벌기 위해 그동안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느라 안 해봤던 고수익의 호스티스나 누드 모델을 병행하며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돈을 모은 1년 뒤,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책은 주인공이 '죽음'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D-DAY 방식으로 장을 나누고 있다. 주인공은 이 과정을 '죽음의 카운트다운'이라고 불렀는데 이 디데이는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건 '죽음'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만드는 죽음의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의 결말은 누구나 예상했듯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혼자만 힘들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지만 1년간의 치열한 삶을 살아본 결과 인생에 깨달음을 얻게 되어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게 된다는 마무리다. 죽음을 주시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갖은 놀라운 힘을 보여주는 결말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뻔하디뻔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은 동화식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공감된 주인공의 상황 묘사 때문이었다.

 

첫 문구를 읽자마자 나는 금방 눈앞이 흐려지며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도 힘들었던 내 상황과 주인공의 상황이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막이 흐르는 5평의 작은 원룸에서 오늘이 며칠인지 따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잠에서 깨면 오늘도 살아는 있구나라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어느새 해는 저만치 기울어 불 꺼진 어두운 방을 붉은 노을빛으로만 밝혔던 때가 있었다. 항상 변함없이 똑같은 날이 반복되다 하루는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죽고 싶지만 죽을 용기가 없어서 억지로 삶을 연명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아... 이런 나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인생의 마법이 시작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명언 하나가 떠올랐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이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 속 사기가 꺾인 장수들에게 이순신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명량해전을 앞에 두고 병사들에게 굳은 정신력으로 싸움에 임할 것을 당부하기 위해 한 말이다. 언뜻 보면 이 책과 이 명언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라는 의문도 들 것이다.

 

그러나 인생도 전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의 나쁜 생각과 좋은 생각을 반복하며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살고자 하면 할수록 더욱더 또렷해지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비관하고 끝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이 책의 주인공처럼 죽을 생각으로 자신이 정한 기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어느새 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 이유를 까먹을 정도로 빛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순신 장군님의 유명한 명언이 떠오른 것 같다.

 

아마 책 제목이 눈에 띄어 구매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다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예로 든 명언과는 달리 우울증은 정신력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신력만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우울증은 정신의 고통과 감정의 고통이 혼합된 마음의 상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우울증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신력이 약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네가 정신력이 약하니깐 우울증이 오는 거야.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잘살고 있잖아? 정신만 단단히 붙잡으면 나을 수 있어!"라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우울증은 피가 나는 육체의 상처와도 같다. 피 흘리는 사람에게 상처를 치료해주기보다는 단순히 정신력으로 이겨내라는 건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크기와 고통의 깊이는 남들이 쉽게 재단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내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다른 사람의 고통보다 작을 수 있으며, 그 고통의 깊이가 누구보다 깊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느끼는 고통의 깊이는 절대 남들과 비교되는게 않는다. 칼에 찔려 아파하는 다른 사람의 고통보다 종이에 베여 쓰라린 내 손가락의 아픔을 더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우울증에 걸린 타인에게 위로를 해주려거든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바라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우울증이란, 빛과 어둠과 같아서 스스로가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보듬어주며 평생 함께해야 할 동반자라는 것을 스스로가 인정할 때 비로소 감정의 휴전상태를 맞이하며 평화로워질 수 있을 것이란 걸 알아두어야 한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죽지 말라며 위로하고 타이르는 대신, 스스로 죽음의 마지노선을 지정해 놓고 죽음을 향해 질주하면서도 점점 자신을 위한 삶을 깨달아가는 주인공의 감정을 고스란히 녹여낸 이 책이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이 책이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하더라도 극적인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한 픽션이 여럿 섞여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는 없다. 죽음을 방조하거나 죽음을 응원하는 책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마음이 힘들거나 공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봤으면 하는 책'으로 이 리뷰를 작성해봤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몇 문장을 소개하며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마쳐본다.

 

 

 

 

지속적인 당당함은 자기 무대에서 나온다 "가족이란 건 말이야,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질긴 끈 같은 거로 단단히 연결돼 있어야 해. 안 그러면 엉망이 돼 버리거든. 가족이든 친구든 자기 주변 사람들을 소홀히 여기면 결국 인생이란 게 비극으로 치닫게 돼." <81p>

 

단 한 걸음만 내디뎌도 두려움은 사라진다 "두려움이란 건 어쩌면 투명한 막에 가려진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 투명한 막을 뚫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치도록 무섭지만,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또 하나의 평범한 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96p>

 

변하고 싶다면 거울부터 보라 "내가 알고 있는 나는 하나뿐이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천차만별이었다. 사실 그림 속의 나는 '나'이면서도 또한 내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나와 남이 느끼는 내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늘 내가 알고 있는 느낌과 나의 기준대로 이해받길 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왜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생각과 느낌은 사람의 숫자만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나와 똑같은 느낌을 요구하거나 이해해 달라는 것은 무리이고 어리광이며 오만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만 나에 대한 남들의 느낌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 <106p>

 

자기 시선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즐거움 "뭐든 그렇겠지만 일류니 고급이니 하는 말은 늘 조심해야해. 본질을 꿰뚫기가 어려워지거든.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잣대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 세상은 온통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만의 눈과 잣대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그게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 <122p>

 

범선은 타륜과 돛으로 항해한다 "물론 서른 문턱까지 오도록 아직 내 꿈을 펼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난 아직 내 갈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해. 하지만 이제 좀 더 과감하게 달려가야겠어. 뭐랄까, 인생의 목적은 늘 분명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 뭘 해야 할지, 그런 목표는 약간 희미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네가 라스베이거스라는 선명한 목표를 가진 것처럼 이제 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목표를 정해야 할 것 같아." <146p>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들 너머에 내가 찾는 것이 있다 "인생은 더럽게 길어, 꽤 살았구나, 해도 아직 한참 남은 게 인생이야. 이 일 저 일 다 해보고 남편 자식 다 떠나보낸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 만큼 길지. 100m경주인 줄 알고 전력 질주하다 보면 큰코다쳐. 아직 달려야 할 거리가 무지무지하게 많이 남았는데, 시작부터 힘 다 쏟으면 어쩔 거야? 60 넘어서도 자기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게 뭔지 잘 찾아봐. 그걸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란 말이야. 내가 왜 이 나이 먹고서도 매일 술을 마시는지 알아? 빈 잔이 너무 허전해서 그래. 빈 잔에 술 말고 다른 재미를 담을 수 있다면 구태여 이 쓴걸 왜 마시겠어? 닥치는 대로 부딪쳐 봐. 무서워서, 안 해본 일이라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일일수록 내가 찾는 것일 수도 있으니깐" <156p>

 

노련한 레이서는 가속페달보다 브레이크를 더 잘 쓴다 "초보 카레이서들은 매 순간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으려고만 한대. 하지만 노련한 카레이서는 가속페달보다는 브레이크를 더 잘 쓴다는 거야. 지금 너한테 딱 필요한 말 같지 않아? 브레이크를 안 쓰면 차가 커브 길에서 전복되거나 엔진 과열로 폭발할 수 있어. 명심해, 너를 결승선까지 데려가 주는 건 네 몸뿐이야. 몸을 홀대하면 결국 몸이 너를 거부하게 될 거야" <186p>

 

 

 

 

* 이 책은 직접 구매하여 읽은 책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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